<칼럼> 국가적 책략없이 정략만 난무하는 후보경선 

박상배 승인 2021.07.28 09:42 의견 0

 

 ‘평천하(平天下)’를 누구에 맡길 것인가. 여권의 대선후보 경선이 지역주의와 역사논쟁으로 뜨겁다. 5천년 한반도 통일의 역사와 그 주류 세력을 놓고 연일 격쟁이 인다. “이긴다면 그것도 역사”라고 덕담을 전제로 한 얘기였다지만, ‘백제가 주체가 돼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이라도 있느냐’는 후미 발언은 누가 들어도 매우 위험스럽고 도발적이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때문에 역사의 영역에서 단도직입(單刀直入)이란 더욱 있을 수 없다.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기 점에서다. 삼국통일의 대업에 가려진 백제史는 ‘나당연합’이란 엄연한 사실, 더욱이 외세를 업은 통일과 폐망의 애절함은 빼놓을 수 없다. 한중일 인접국가들 과의 정치 경제 문화 외교사적 의미는 그 깊이를 더한다.

 

백제 폐망(660년) 8년 뒤, 원인을 내분에서 찾고 있지만 광활한 북방을 호령하던 고구려까지 멸망하면서 통절한 감정이 우리역사에 남아있다. 그만큼 ‘사이다 발언’식으로 접근하기엔 주제가 무겁고 엄중하다.  

 

정치, 종교, 지역성 발언 동창회, 산악회 등 모임에서 조차 금기의 덕목

 

역지사지(易地思之)면에서 ‘그래서 너희는 안 돼’라는 언어폭력으로 들릴 수 있다. 하물며 백제권 후보나 지역주민인들 상심이 오죽할까, 가슴을 후비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그러고도 녹음파일을 들이대며 덕담이라고 우기는 후보의 부박함은 감정의 골을 덮기엔 쉽지만 않아 보인다.

 

정치, 종교, 지역성 발언은 그 흔한 동창회, 산악회 등에서 조차 금기의 덕목이다. 각자의 주관이 분명하고 고감도 주제이거늘, 통일의 역사를 앞세워 평천하를 하겠다고 나선 대선 주자들의 인식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의 입에서 범부들 생각만도 못한 지역주의 망언들이 서슴없다. 지역주의 논쟁에 수습은 없고 진영마다 전략만 난무할 뿐이다. 

 

경선관련 후보 간 지역구도에서도 여권의 고심이 깊다. 고질적인 지역주의 격발 당사자는 전통적인 호남기반의 민주당 간판을 단 영남출신 수도권 현직도지사다.

 

그런 인식의 바탕을 통해 오늘날 정치적 자산을 쌓았는지는 모르겠다. 보수진영인 영남권을 향한 자신의 확장성, 그리고 추격해 오는 호남출신 상대후보들의 고립화 우려를 겨냥한 듯한 이중포석으로 여겨진다.

 

겉으론 서로를 향해 “지역주의 조장 말라”하지만 속내는 지역주의 선동 다름아냐.  

 

추격을 꾀하는 호남 텃밭출신의 두 전직 총리출신 후보들의 입장도 그렇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등 언제까지 호남이 영남출신 대선후보의 승리에 동원세력으로 머물 것이냐는 회의감이 깊던 터였다.

 

적·서차별 예송논쟁, 탄핵찬반 전력논쟁 등 과거정치 소환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서로를 향해 “지역주의를 조장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속내는 지역주의 선동이나 다름없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이후 직접 경작에 나서겠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지만 텃밭인 호남권에서조차 고전중이다. 이를 반전의 계기로 삼아 결집효과를 기대한 듯하다.

 

어차피 지역대항 성격의 대선에서 지역주의는 예고된 사항이긴 하다. 당내 경선과정부터 이처럼 노골화된 데는 국민참여 방식이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백제동맹’, ‘DJP연합’ 수적열세 극복과 영남의 호남고립화 탈출전략

 

DJ당선 당시 ‘백제동맹’이란 말이 전략으로 통용된 적이 있다. 백제권인 충청과 호남의 결합, 즉 공동정부를 고리로 한 DJP연합이었던 셈이다.

 

평생을 두고 집권세력의 호남고립화 전략에 신음해온 DJ는 영호남간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왔다. 

 

이보다 훨씬 앞선 (72년 대선출마를 앞둔 대권·당권이 걸린) 69년도 당내경선은 많은 풍자와 해학, 그리고 촌철살인의 명구를 넘쳐나면서 우리 정치사의 품격 있는 명승부로 구석구석 기록에 남겼다. 이른바 ‘40대 기수론’도 이때 얘기다.

 

노회한 유진산(진산,珍山) 당수를 상대로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소석) 등이 젊은 패기와 용기를 앞세워 공동전선을 펼쳤다. 진산(珍山)도 쉽게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 구상유취(口尙乳臭),“젖비린내 나는 얘기”라며 맞받았다.


 
대여(對與) 투쟁방식에 있어서 선명성 경쟁에 불을 당긴 김영삼(YS) 김대중은 노회한 유진산을 상대로 압박했다. 3+7 구땡 화투장에 당수의 얼굴을 그려넣고, ‘사쿠라’ 논쟁을 벌인 것도 이때 얘기다.

 

결국 백기를 든 진산은 민주당 신파·구파를 대표한 두 세력가운데 같은 구파계열인 YS를 지명했으나 결선투표에서 당권·대권 러닝메이트로 맞선 ‘DJ와 소석’에게 분패했다.

 

민주당 구파·신파는 그 뒤에도 YS의 상도동계과 DJ의 동교동계으로 나뉘어 각축을 벌이며, 80년 ‘서울의 봄’과 87년 대선에서 각자의 길을 걸었다. 

 

행정수도(수도이전론) 이전문제 충청세 확보위한 69년도 당내경선 때부터 시동

 

행정수도(수도이전론) 이전문제도 향토예비군 폐지 주장과 함께 그 당시 DJ가 내걸었던 대선공약이다.

 

남북 간 대치목전에 거대 수도서울을 둔다는 것은 안보문제 뿐만 아니라, 교통 주택 환경 교육 등 불필요한 국력낭비가 막대했다. 경제활동에 불편을 주는 향토예비군법도 폐기돼야 한다는 것이 DJ의 주장이었다. 

 

이로 인해 직장예비군을 창설하는 대신에 DJ에게는 색깔론과 용공주의자, 빨갱이라는 딱지가 평생을 붙어 다녔다. 보수본류를 자처해온 자민련 김종필(JP)총재는 DJP연합을 통해 이 같은 DJ에 대한 이념적 불안감을 씻어주는 부수적 효과도 안겼다.

 

DJ의 용의주도한 계산이 앞섰다.

 

72년 대선, 본선 표차가 60만 표차까지 따라붙을 정도의 가공할 만한 행정수도 이전문제는 당시 중대 이슈로 받아들여졌다. 승자인 박정희 대통령은 임기 중인 1978년 즈음 신탄진 인근 후보지를 몇 차례 저공비행하며 밑그림을 완성시킨 사실이 사후 밝혀졌다.

 

충청대망론 충청세 3분화 절호의 기회 날려, 50년만 여야수평적 정권교체 기여

 

이회창 대 DJP연합세력, 이인제 후보가 맞붙은 97년 대선에서 여권의 후보결정도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지역결합성이 강하다.

 

40여년 영남주류의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재집권 전략의 명분을 킹메이커인 김윤환(허주) 의원이 짜냈다.

 

충청출신 후보를 내세워 영남세력 동원령하면 호남고립화 전략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당시 꽃놀이패나 다름없던 충청권 정치세력은 이회창, 이인제, JP 등 3분화 사태로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권력의 중추에서는 밀려났다.

 

결과론적이지만 ‘50년 만의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주었다는 평가는 남았다.

 

야당으로 전락, 2002년 두 번째 설욕전을 벼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재집권에 나선 DJ는 이번엔 영남출신 노무현 후보를 내세웠다. 전략적 선택이 가능한 호남세력 집단동원이 가능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여기에 호남인만의 피해의식이 강했던 ‘지역주의 타파’라는 대의명분도 충만했다. 노무현 후보는 나중 ‘재미 좀 봤다’고 실토한 ‘행정수도 이전문제’까지 재포장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를 제안한 장본인도 노무현 정부임기 내 책임총리를 맡은 이해찬 전 당대표였다.

 

지금 우리의 여야관계는 보수와 진보간의 진영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내용면에서는 영남과 호남 두 권역을 대표하는 거대정당 간에 정치권 주류세력 교체를 위한 주도권다툼에 불과하다.

 

호남기반의 민주당 내에서는 “영남출신 후보만이 확장성이 있다”고 말한다. 선두를 이끄는 이재명, 김경수, 김두관 추미혜 등이 그들이다. ‘문의 복심’, ‘리틀노무현’, ‘호남며느리’라며 영남출신 뿌리를 한자락 깔고 말한다.

 

‘총리직함’이란 강력한 대선 후보자격 직행코스를 달려온 이낙연, 정세균 등 호남출신 후보들은 ‘호남고립주의’를 자초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올무성 시각과 공격적인 도식에서 갇혀 쉽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백제권 불가론’ 지역구도 전략 시대착오적 유산, 정파적 이익집착 국가·시민사회 패악

 

집권여당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백제권 불가론’은 이런 시대착오적인 전략과 정치적 산술에서 나온 꼼수발상에 불과하다. 더구나 수준 높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선거 만능시대 ‘내편은 뭉치고 상대편은 쪼개는 것’이 승리지상주의의 기본술책이다. 하지만 이기는 싸움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저돌성, 정파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원초적 문제가 선진 민주사회에서 더 큰 패악의 근원이다. 

 

우리 정치가 과정상의 문제, 요즘 말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당성’,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위해 맞서 싸우고 지켜온 궁극의 가치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촛불 혁명과 노무현 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는 ‘반칙과 특권없는 사회’의 전매특허가 무명의 검찰총장출신 장외후보에게 돌아간지도 한참 됐다. 

 

민주화 세력의 종가집인 민주당에서 지금 격한 논쟁을 벌여야 할 주제 역시 집나간 시대정신을 되찾아 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그때보다도 더 시급하고 절박한 사회문제가 산적해 있지 않은가 


 
말로는 촛불 혁명과 노무현 정신을 외치지만 머릿속에는 오직 ‘선거’라는 계산과 계기만을 노리는 기회주의 행태로는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얻기가 힘들다.

 

대선을 8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선거'를 인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과정으로 바라 볼 것인가, 아니면 '선거 승리'라는 협소한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 냉철히 평가할 유권자들의 마음은 그래서 날로 착잡해져만 갈 뿐이다. 

 

  박상배 순천향大 초빙교수(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도움말> 


※ 사쿠라 어원: 일본에서 사쿠라는 '구라,사기' '바람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과거 벚꽃축제 시절에 손님들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대신 연극이나 장사판에서 박수갈채 등의 리액션을 하도록 요구받았는데, 이 때문에 벚꽃 축제의 바람잡이, 즉  사쿠라가 되었는 설.


또는, 일본에서 금육령을 해제한 이후 말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여 팔았는데, 이 때 말고기의 색깔이 벚꽃과 흡사해서 소고기 인줄 알고 사간 말고기의 식감이 끔찍하자 '또 사쿠라 샀다'며 투덜댔다고 해서 사쿠라 = 구라의 어원이 되었단 설이 있음.

 

※ 선명성 경쟁(60~70년대): 정치인 유진산의 별명이 사쿠라였던 것도 이 때문인데, 1964년 언론윤리위원회법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유진산이 해당 법이 통과되는걸 수수방관했고, 이로 인해 같은 야당 정치인이자 라이벌이었던 윤보선이 '공화당과 뒷거래를 하고 끄나풀이 되었다' 라고 주장하자 윤보선 패거리가 '사쿠라 유진산을 잡아 족쳐라!'라고 난장판을 내고, 언론법에 반대하던 언론인들이 분노의 기사를 써서 '왕사꾸라 유진산' 특종을 써내리며 유진산은 사꾸라의 대명사가 되었음

 

※ 3+7 구땡 화투장: ‘섯다’에는 3월+7월로 장땡을 제외한 1~9땡을 이길 수 있는 땡잡이라는 패가 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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