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원대학교 문화예술원장 / 구자홍


경기를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한 선수도, 화려한 전략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심판의 위치와 태도다.

심판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언제나 중앙이어야 하고, 그의 눈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아야 한다. 심판이 흔들리면 경기가 흔들리고, 경기가 흔들리면 관중이 등을 돌린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신뢰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요즘 우리의 정치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마치 심판이 한 발은 중앙에 두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발은 특정 팀 벤치에 걸쳐 둔 듯한 모습 말이다.

규칙은 늘 존재하고, 절차는 늘 설명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묘한 불신이 피어난다. “저 휘슬이 정말 모두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어느 한쪽을 향한 것인가.”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언제나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사건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다. 설명보다 책임이 늦고, 기준보다 셈법이 앞서고, 공동체보다 자기 진영의 이해가 먼저 보일 때, 문제의 본질은 ‘무엇을 했는가’보다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로 옮겨간다.

공적 권한을 쥔 자리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는 순간, 그 사람의 이름 위에는 국민이라는 이름, 제도라는 이름이 먼저 얹힌다. 그래서 같은 행동이라도 일반 시민의 선택과 공적 책임자가 행한 선택은 다르게 평가받는다.

권한이 크다는 것은, 그 권한을 둘러싼 감시와 기대 또한 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적해명이나 기술적인 설명이 아니다. “문제가 없다”는 말보다 더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그 자리에 요구되는 기준이 무엇인지 스스로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정치가 여전히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만 엄격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같은 행동도 내 편에게는 사연이 되고, 남의 편에게는 죄목이 되는 오래된 장면을 반복해서 보게 될 것이다.

정치는 결국 신뢰 위에 서야 한다. 신뢰란 화려한 언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도와 선택의 축적 속에서 쌓인다. 혹시나 심판이 자기 팀 벤치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 자체가 이미 신호다.

그것을 가볍게 넘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간 멈춰 서서 점검해야 한다.

이번 논란이 특정 개인의 흠결로만 남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우리가 정치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기준,공적 권한이 가져야 할 무게, 그리고 무엇보다‘공정함의 형식’이 아니라 ‘공정함의 마음’을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심판이 중앙으로 돌아올 때 경기는 다시 신뢰를 얻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맞는 양심의 방향만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